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(문단 편집) === 왕세자비 === 잉리드는 [[영국]]에서 교육받으며 야외 스포츠를 즐겨 했는데 특히 [[승마]]와 [[스케이트]]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. 후에 자라면서 영국의 [[에드워드 8세|에드워드 왕자]]와 [[조지 에드워드 알렉산더 에드먼드|조지 왕자]][* [[조지 5세]]의 4남, 1902~1942. 훗날 [[그리스 왕국]]의 [[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나|마리나 공주]]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지만 [[항공사고]]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.]와 혼담이 오갔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.[* 후에 조지 왕자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한다.] 잉리드는 덴마크의 왕자인 프레데리크와 결혼이 결정되었다.[* 청혼을 두 번 받았는데 처음에는 어리다고 거절했다.] 둘은 17년 전 여름 거주지였던 소피에로 성에서 처음 만났다. 당시 프레데리크는 18세의 생도였고 잉리드는 7세였다. 프레데리크의 할머니는 스웨덴 출신의 공주([[로비사 요세피나 에우게니아|스웨덴의 로비사]])였기에 가까운 세대에서 혼맥으로 얽혀 있었고,[* 스웨덴 국왕 [[오스카르 1세]] 기준으로 하면 8촌이다. 또한 [[레오폴트(바덴)|바덴 대공 레오폴트]] 기준으로도 8촌이며, [[파벨 1세]]의 기준으로 하면 11촌 관계가 되기도 한다.] 이는 범 [[스칸디나비아]]적 동맹을 강화하는 좋은 계기였다. 1935년 5월 24일, 25살의 잉리드는 [[스톡홀름]] 대성당에서 프레데리크와 결혼식을 올린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75-RD31.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결혼 사진''' || 잉리드는 사이가 좋지 않던 남편과 시아버지 간의 부자 갈등을 완화하며 왕실을 안정시켰다. 남편과의 사이에서 [[마르그레테 2세]], 베네딕테 공주, [[아네마리 다우마 잉리드|아네마리 공주]]를 낳았다.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영향으로 진지하고 딱딱했던 잉리드는 후일 덴마크가 웃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회고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